그는 뉴욕 버팔로 출신이지만 필라델피아에서 30여 년을 거주하여 사후 3층 높이의 거대한 벽화로 영원히 남았다. 케니 지, 네이지와 같은 후배 색소포니스트를 양성하여 스무드 재즈의 선구자로 불린다.
그는 재즈와 팝을 망라하여 색소폰 연주자 중 손에 꼽히는 상업적 성공을 거두었지만 정통을 추구하는 재즈 뮤지션들의 비난과 질투에 시달려야 했다. 그가 루이 암스트롱의 명곡을 더빙하면서 급기야 팻 매스니가 장문의 비판글을 올리는 사태로 이어졌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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